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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_10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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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차이킴 대표는 박선영 침선장의 바느질 수업을 들으며 한복 짓는 일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그 뒤로는 박물관을 찾아가서 출토복식도 보고 도록도 보며 공부했다. 책과 박물관이 내 선생님이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1일은 ‘한복의 날’이었다. ‘한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한복의 우수성과 산업적·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날’이다. 그만큼 한복을 입고 즐기는 인구가 적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인터넷에 ‘한복’으로 검색만 해봐도 한복을 입고 찍은 일상 사진이나 ‘인증샷’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일 입는 패션 스타일을 가리키는 ‘데일리 패션’처럼 일상 속에서 한복을 입는 ‘데일리 한복’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의 원조라 할 만한 이가 있다. 그의 손끝에서 조선시대 무관의 옷인 철릭을 변형한 철릭원피스, 트렌치코트처럼 입을 수 있는 배냇저고리, 재킷처럼 만든 저고리 등이 탄생했다. 바로 2013년 첫선을 보인 한복 브랜드 ‘차이킴’의 디자이너인 김영진 대표(45)다. 



 



한복에서 흔히 쓰지 않는 애니멀프린트 원단이 독특한 김영진 디자이너의 의상.


'차이킴’은 올해 두타면세점에 이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입점했다. 두 매장 모두 한복 브랜드가 처음 들어섰다. 5월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에서는 피날레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에 참여했고, 세계적 라이프스타일숍인 ‘10 꼬르소꼬모’에서 그의 옷을 캡슐 컬렉션으로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김영진 대표를 최근 서울 중구 장충단로 두타면세점 차이킴 매장에서 만났다. 말끔한 단발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김 대표는 오묘한 곡선이 살아있는 흰색 베스트에 원피스 차림이었다. 옷이 예쁘다고 말하자 “베스트에 궁중 예복이던 원삼의 라인을 살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 한복 매장을 흔히 찾아보기 힘든 면세점에 입점했다.

 “옷에는 그 나라 특유의 미학이 담겨 있다. 중국과 일본 모두 일상에서 기모노나 치파오 같은 전통의상을 자주 입는다. 그들이 한복을 봤을 때 ‘이런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하며 호기심을 느끼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 오는 외국인을 만나보면 옷을 입어보고 구경하면서 ‘아 이런 점이 다르구나’ 느끼는 것이 보인다. 이런 경험이 분명히 실제 구매로도 이어진다.” 


 ― 왜 맞춤 한복 브랜드인 ‘차이 김영진’을 운영하다 기성복 브랜드인 ‘차이킴’을 냈나.

 “맞춤 한복을 하며 내가 갇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맞춤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기본적으로 소수를 위한 옷이다. 손님과 나 사이의 생각 차이를 좁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차이킴은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 기존 한복을 변형한 디자인이 많다. ‘전통에 어긋난다’는 평도 있을텐데….


 “한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살아 움직여야 한다. 전통이라고 치켜세우는 바람에 오히려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하는 면이 있다. 1920, 30년대 외교관 사진 중에 홍콩에서 수입한 레이스로 만든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 그만큼 한복은 글로벌한, 시대와 호흡하는 옷이었다. ‘한복은 우아하다’라고만 치부하는 것도 싫다. 한국의 여자는 우아하기만 한가? 내가 짓는 한복에 유머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레이스나 니트처럼 흔히 쓰지 않는 소재를 쓰는 것도 독특하다.

 “옷을 디자인할 때 소재를 먼저 생각한다. 한복은 전통 소재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나. 직접 이탈리아나 영국에서 원단을 주문해서 쓰기도 한다. 인기 있는 의상 중 하나가 리버티 원단으로 만든 저고리인데,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면으로 된 한복을 입으시던 것이 생각나 만들었다. 레이스를 쓴다 하더라도 안감은 모시 같은 한국 소재를 덧댄다. 그런 식으로 동서양이 충돌할 때의 재미랄지, 아름다움이 있다.”


 ― 연극배우로도 활동했고, 이후 패션업계에서 일하며 루이뷔통 남성복 한국 론칭을 이끄는 등 경력이 다양하다.  

 “전통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20대 때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다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갔다. 그때도 전통극을 좋아했었다. 극단에서 생활하며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자연스레 알아갔던 것 같다. 그러다 생활인으로 살아보고자 패션계 문을 두드렸는데, 그때 브랜드 운영에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 과거 한때 개량한복이 유행했는데 이제 다시 패션한복이 뜨고 있다.

 “아유, 개량한복은, 그 단어는 정말….(김 대표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한복을 개량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차이킴’을 시작한 것도 개량한복이 만들어놓은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서였다. 한복도 옷이고 패션이다. 일단 예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오래가고 많이 입는다. 한 가지 힘든 점은, 디자인을 아무렇지 않게 베끼는 업체들이 너무 많다. 철릭원피스라는 단어는 차이킴에서 처음 만들어낸 단어다. 2, 3년에 걸쳐 디자인과 핏을 고민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너도나도 철릭원피스를 제작해 판매한다. 다른 의상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창의성에 대한 존중이 없는 현실에 힘이 빠질 때가 많다.”
 


 ― 그래도 ‘차이킴’은 대표적인 한복 브랜드가 됐다.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꿈이 무엇인가.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백화점에 ‘상하이탕’(중국 전통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급 패션브랜드) 매장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노(No) 세일’ 브랜드였다. 그런데도 영국 여자들이 치파오를 사 입겠다고 난리가 나서 줄을 서는 것이다. 그걸 보고 ‘우리도 그런 브랜드가 있어야 하는데’ 하며 피가 끓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전통을 담았으면서도 100년이 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내 뒤를 이을 후배들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찾는 중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